1. '로케이션'에 대한 새로운 접근
'Action Location'
포럼의 기조강연을 맡은 데이비드 R. 벨(David R. Bell) 박사는 AI 기술이 주도하는 옴니채널 시대에는 '위치(Location)'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과거 유통채널이 곧 오프라인 매장을 의미했을 때 위치, 즉 상권은 소매업체의 매출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였죠.
하지만 글로벌 이커머스 침투율이 20%에 이르는 지금도 여전히 소매업에서 '위치'는 중요한 요소일까요.
벨 교수는 '그렇다'고 답하며, 대신 소매업의 '위치' 최적화에 대해 세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는데요.
첫째, 고객 유입을 늘리고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매장 위치(location of stores)' 최적화,
둘째, 이커머스 시장이 확대되고 라스트마일 서비스가 중요해짐에 따라 부각되고 있는 '고객별 위치(location of customers)'에 맞는 물류 최적화,
마지막으로 '행동 위치(location of action)'의 최적화입니다.

기조강연을 맡은 데이비드 R. 벨 박사는 미래에는 고객 행동 위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어요.
가장 흥미로운 접근은 세 번째, 행동 위치의 최적화인데요.
벨 교수가 말하는 행동 위치는 단순히 물리적 위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실제로 행동을 일으키는 지점 즉, 검색·비교·구매 등 의사결정이 발생하는 '행동의 장소'를 의미합니다. 고객이 어디에서 사는지(buy), 어느 곳에 사는지(live)는 여전히 중요한 요소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자사 플랫폼 안에서 고객들이 무엇을 보고, 어디서 클릭하고, 누가 추천해주는 상품을 구입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고객 행동 위치의 최적화를 도와주는 기술이 바로 AI입니다.
벨 교수는 "소매산업에는 여전히 비효율적인 일들이 많고, 그 만큼 혁신의 기회도 많다"며 "AI는 이러한 혁신을 가능케 하며, AI를 통해 가장 큰 가치를 창출할 산업도 바로 소매업"이라고 말했습니다.

자료 : 데이비드 R. 벨 박사
2. 제3차 유통 대변혁 가져올 'AI'
AI는 비즈니스 프로젝트
유통에서 AI는 이제 '기술적 도구’를 넘어 전략, 운영, 마케팅 등 유통 전반에 걸쳐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핵심 인프라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최근 1~2년 사이 열리고 있는 주요 글로벌 유통 컨퍼런스에서 핵심 메시지를 관통하는 것도 AI를 통한 소매혁신입니다.
이날 포럼 연사로 참여한 김호민 아마존 아태지역 유통 부문장은 현재 소매업계 AI 적용단계를 설명하고, 어떻게 하면 AI를 실질적인 비즈니스 성과로 연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시했습니다.
김호민 부문장은 "지난 30여년 간 글로벌 소매산업은 두 번의 대변혁기를 거쳤다"며 "첫 번째 변혁은 1990년대 중후반 이베이와 아마존의 등장으로 시작된 이커머스 탄생, 두 번째는 2010년경 애플의 아이폰으로 촉발된 모바일 혁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두 차례의 혁신은 유통의 판도를 뒤집으며 소비자의 쇼핑행태는 물론 소매기업의 운영 방식 모두를 바꿔 놓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AI, 특히 생성형 AI 기반의 유통 혁신이 촉발할 ‘세 번째 대변혁기’의 초입에 있습니다.
생성형 AI가 소매업에 접목되면서 그 변화는 매우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챗GPT가 처음 등장한 2023년, 기업들은 수많은 실험과 테스트를 통해 기술을 검증했고, 2024년에는 실제 제품과 서비스에 적용하기 시작했으며, 올해는 비즈니스에서 실질적인 가치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기술 도입부터 검증, 실험, 성과창출까지 채 3년이 안걸린 셈이죠.

자료 : AWS
AI기술 투자와 활용 측면에서 가장 선도적인 기업은 역시 아마존인데요. 김호민 부문장은 "아마존은 사실상 모든 업무, 모든 가치사슬 단계, 모든 고객의 여정에 AI를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에이전트 AI(Agentic AI)를 접목한 쇼핑 어시스턴트 '루퍼스(Rufus)'입니다. 아마존은 고객의 69%가 쇼핑몰에 접속하자마자 검색창으로 이동하지만, 80%가 검색 결과에 만족하지 못해 이탈한다는 점에 주목해 루퍼스 서비스를 개발했어요. 쉽게 말해 검색창 안에 챗GPT가 들어온 것 같은 대화형 쇼핑경험을 구현한 것이죠. 루퍼스는 아마존 내 축적된 고객 데이터에 기반해 상황, 의도, 맥락에 최적화된 상품을 추천합니다. “캠핑 갈 때 무엇을 사야 하지?”, “헤드셋을 살 때 고려할 점은?”과 같은 자연어 질문도 가능하죠. 두 번째 사례는 지난 4월 시범 도입한 ‘바이포미(Buy for Me)’ 기능입니다. 말 그대로 아마존이 고객을 대신해 상품을 구매해주는 서비스인데요. 고객이 아마존 쇼핑몰 안에서 원하는 상품을 찾지 못할 경우 에이전트 AI가 외부 사이트까지 탐색해 상품검색부터 결제, 배송 요청까지 전 과정을 대행합니다. 아마존 플랫폼 안에서 다른 사이트 상품도 구매할 수 있는 '바이포미' 서비스아마존은 이 외에도 수요예측부터 주문배송 처리, 가격책정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에이전트 AI를 활용하고 있어요. 김호민 부문장은 "AI 프로젝트는 기술 프로젝트가 아니라 비즈니스 프로젝트"라며 "조직 내 디지털 리터러시 구축, 실험을 장려하는 문화, 비즈니스·기술 조직의 협업,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외부 파트너 확보가 AI 프로젝트 성공의 핵심"이라고 조언했습니다.
3. 소매업 미래의 세 가지 방향
세계화, 지속가능경영, 디지털화
와세다대학의 카와카미 토모코 교수는 일본의 대표 소매기업인 이온(Aeon)과 유니클로(Uniqlo)의 경영전략을 통해 미래 소매기업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이온은 우리나라 대형마트와 유사한 GMS(General Merchandise Store) 포맷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이고, 유니클로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패스트패션 브랜드입니다.
카와카미 교수에 따르면 운영하는 업태는 다르지만, 두 기업 모두 '세계화(Globalization)’,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디지털화(Digitalization)'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미래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유니클로는 미국, 유럽, 아시아 등에서 일본의 두 배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죠. 해외사업 호조에 힘입어 지난 8월 마감한 유니클로 연매출은 전년 대비 9.6% 증가한 3조 4,000억 엔(222억 달러)을 기록했고, 영업이익도 전년대비 13% 증가한 5,643억 엔(37억 달러)을 기록했습니다. 이온 역시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외진출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이온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Net Zero)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1991년부터 30년 넘게 약 3천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유니클로가 지향하는 지속가능경영은 '라이프웨어(LifeWear)'라는 가치에 농축돼 있습니다. 라이프웨어는 '모든 사람이 편안하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겠다는 유니클로의 핵심 철학인데요. 빠르게 바뀌는 유행을 좇는 대신 오래 입을 수 있는 좋은 품질의 옷을 만들어 과잉생산과 낭비를 줄이자는 취지가 담겨 있습니다. 생산 과정에서는 재활용 소재와 친환경 원단을 사용하고, 판매 이후에도 헌옷 수거(RE.UNIQLO) 프로그램을 통해 의류를 재사용·재활용할 수 있도록 독려합니다.
두 기업의 세 번째 공통 전략인 디지털화는 카와카미 교수가 가장 강조한 부분입니다.
유니클로는 모바일 앱뿐 아니라 RFID 기술을 이용해 계산대에 올리기만 하면 자동결제되는 시스템, VR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피팅룸 등 매장의 디지털화에도 선도적으로 투자하고 있어요.
전통 오프라인 소매기업인 이온 역시 최근 디지털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어요. 2023년 각 계열사별로 흩어진 고객정보를 모아 '아이이온(i-Aeon)'이라는 디지털 통합 플랫폼을 구축하는 한편, 매장에는 모바일 셀프 스캔 결제 시스템인 레지고(RegiGo)를 도입했습니다. 레지고는 고객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레지고 앱에 접속해 장보기와 계산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셀프체크아웃보다 한단계 진화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온은 레지고 앱과 아이이온 앱을 연동해 레지고 앱에서도 고객 개인별 추천상품이 표시되고 자동으로 쿠폰도 적용될 수 있도록 할 방침입니다.
카와카미 교수는 이온과 유니클로가 공통되게 지향하는 세계화, 지속가능성, 디지털화는 급변하는 시대에 소매 경쟁력 확보를 위해 모든 소매업체들이 추구해야 할 필수전략일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일본 이온은 매장에서 쇼핑하면서 결제까지 할 수 있는 모바일 셀프 스캔 결제 시스템 '레지고(RegiGo)'를 도입했어요.
4. 글로벌 혁신의 중심, APEC
모바일 커머스에서 모빌리티 커머스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은 전세계 디지털 커머스 거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빠른 기술 수용과 높은 수요에 힘입어 유통 혁신이 급속도로 전개되는 역동적 시장입니다. 전세계 모바일 커머스의 80%가 이뤄지며, 라이브커머스가 태동한 것도 아시아 지역이죠.
딜로이트 아시아퍼시픽 소비재산업 마티스센 리드는 "아태 지역은 소매 혁신이 가장 빠르게 등장하고 확산되는 곳"이라며 "특히 세 가지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 첫 번째가 옴니채널 분야인데요.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매끄럽게 연결해 일관성 있고 편리한 쇼핑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모든 소매업체가 지향하고 있지만, 성공적으로 실행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마티스센 리드는 아태 지역의 대표적인 옴니채널 성공사례로 중국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허마(Freshippo)'와 싱가포르의 '페어프라이스(FairPrice)'를 소개했습니다.
허마는 알리바바 그룹이 신유통을 주창하며 론칭한 슈퍼마켓으로 매장 공간의 일부를 물류 및 온라인 주문 처리용 백오피스로 활용하고 온-오프를 연계해 ‘미래형 리테일 포맷’을 구현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싱가포르의 유통기업 페어프라이스 역시 온-오프라인을 통합한 하이브리드 쇼핑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올해 8월 풍골 디지털 지구 내 개점한 페어프라이스 파이니스트(FairPrice Finest) 매장은 개인화된 쇼핑추천 및 프로모션 안내, VR을 연동한 엔드리스 매대, 생체이식 결제 등 곳곳에 AI 기술이 적용된 미래형 슈퍼마켓입니다.

싱가포르 페어프라이스가 올해 선보인 AI 기반의 미래형 슈퍼마켓.
두 번째 아태 소매기업들이 앞서고 있는 분야는 디지털 중심의 생태계 구축입니다. 알리바바, 라자다, 그랩 같은 곳은 커머스 외에도 물류, 핀테크 등 다양한 기업과 제휴, 고객에게 통합된 쇼핑경험을 제공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자동차 제조기업과 협업해 모빌리티 커머스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국 자동차 기업 지리(Geely)와 티몰(Tmall)이 대표적인 협업사례예요. 지리는 차량 안에 쇼핑, 결제가 가능한 환경을 구축하고 티몰은 차량 안에서 상품을 검색·주문할 수 있도록 커머스 채널 역할을 하며, 배송 기업 어러머(Ele.me)는 차 안에서 주문한 음료나 음식을 차량 위치 기반으로 즉시 배달해주는 역할을 맡습니다. 고객이 이동 중에도 구매→결제→배송까지 완결되는 모빌리티 기반 커머스가 구현되는 셈이죠. 중국의 또 다른 자동차 제조사인 니오(NIO)와 이커머스 플랫폼 징동닷컴(JD.com)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차량 내 식음료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마티스센 리드는 “딜로이트 분석에 따르면 향후 5년 내에 아태 지역의 상거래 매출 70%가 디지털 플랫폼에 의존할 것으로 예측된다”며 “하지만, 국가 간, 지역 간 디지털 인프라 격차가 존재하는 만큼 이를 해소하기 위한 인프라 개선, 교육, 제도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5. AI 시대의 글로벌 표준
신뢰성 있는 데이터가 AI 경쟁력
이날 세 번째 연사로 나선 GS1 르노 드 바르부아 CEO는 "우리는 지금 AI가 산업과 경제는 물론 사회구조까지 재편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있다"며 "AI 시대에는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확보'가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강조했습니다. GS1(Global Standard No.1)은 전세계에서 활용되고 있는 상품 바코드(UPC·EAN)와 표준 유통 식별코드를 관리하는 국제 비영리 표준기구입니다.
르노 CEO는 “AI는 제품생산부터 배송, 판매, 고객경험에 이르기까지 유통 전 과정을 혁신하지만, AI 기술의 기반인 데이터의 신뢰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잘못된 판단과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며 "AI의 진정한 힘은 데이터의 신뢰성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GS1은 전 세계 제품의 고유 식별 정보를 담은 글로벌 등록 시스템(Global Registries)을 구축하고 정확한 상품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으며, AI 시대에 맞춰 보다 많은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하기 위한 이차원 바코드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르노 CEO는 "1974년 처음 도입된 바코드 시스템을 계기로 전세계 유통혁신이 이뤄졌듯이 제품의 안전, 재활용 지침, 환경 영향 정보까지 확인할 수 있는 2차원 바코드(GS1 QR코드)가 AI 시대의 새로운 유통 혁신을 이끌 것"이라며 "이를 위해 글로벌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유통 퓨처테크포럼’은 AI, 데이터, 지속가능성, 디지털 전환 등 글로벌 소매산업의 핵심 화두를 한 자리에서 논의한 의미 있는 자리였습니다. 연사들은 AI 시대의 소매업은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생태계를 구축해야 하며, ‘신뢰와 협력’이 유통 혁신의 진정한 기반임을 공통적으로 강조했어요.
경주에서 열린 APEC 리테일 퓨처테크포럼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이 전 세계 유통 혁신을 이끌어가는 중심 무대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2025. 11. 05ㅣ 7 min read
글 : 윤은영 편집장(editor@retail-trend.co.kr)
한∙미∙일∙중 유통 전문가들이 제시한
글로벌 소매업계 5가지 화두
지난주 내내 수많은 화제를 뿌렸던 '2025 APEC CEO 서밋'이 흡족한 성과와 함께 무사히 끝났습니다. 글로벌 경제에서 유통이 차지하는 위상이 높아진 만큼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는 'APEC 유통 퓨처테크포럼'이 부대행사로 진행됐는데요. 한, 미, 일, 중 글로벌 유통 전문가들이 연사로 참여해 소매업계의 미래 향방을 가늠케 하는 굵직한 화두들을 던졌습니다. 리테일톡에서 경주 APEC 현장을 직접 다녀왔어요. 현장에서 들은 내용들을 자세히 전달해 드립니다
10월 28일 경주예술의전당에서 개최된 '유통 퓨처테크포럼'은 글로벌 유통 전문가 및 국내 주요 유통사 대표들이 참석한 '경주선언식'으로 막을 올렸습니다. APEC 2025 개최를 계기로 '상생의 유통 생태계' 구축을 포함, 유통산업의 지속적인 혁신과 발전을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을 다짐한 데 이어 영상을 통해 유통산업의 비전과 미래 방향에 대해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왼쪽부터 카와카미 토모코 와세다 교수, 공샹잉 징둥닷컴 부사장, 박경도 한국유통학회 회장, 정지영 현대백화점 대표,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 오승철 산업통상부 산업기반실장,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르노 드 바르부아 GS1 CEO, 허서홍 GS리테일 대표, 전경수 CPLB 대표, 김호민 아마존 AP 유통부문장, 바네사 마티스센 딜로이트 AP 소비재산업 리더)
글로벌 소매업계 5가지 키워드
1. '로케이션'에 대한 새로운 접근
'Action Location'
포럼의 기조강연을 맡은 데이비드 R. 벨(David R. Bell) 박사는 AI 기술이 주도하는 옴니채널 시대에는 '위치(Location)'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과거 유통채널이 곧 오프라인 매장을 의미했을 때 위치, 즉 상권은 소매업체의 매출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였죠.
하지만 글로벌 이커머스 침투율이 20%에 이르는 지금도 여전히 소매업에서 '위치'는 중요한 요소일까요.
벨 교수는 '그렇다'고 답하며, 대신 소매업의 '위치' 최적화에 대해 세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는데요.
첫째, 고객 유입을 늘리고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매장 위치(location of stores)' 최적화,
둘째, 이커머스 시장이 확대되고 라스트마일 서비스가 중요해짐에 따라 부각되고 있는 '고객별 위치(location of customers)'에 맞는 물류 최적화,
마지막으로 '행동 위치(location of action)'의 최적화입니다.
기조강연을 맡은 데이비드 R. 벨 박사는 미래에는 고객 행동 위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어요.
가장 흥미로운 접근은 세 번째, 행동 위치의 최적화인데요.
벨 교수가 말하는 행동 위치는 단순히 물리적 위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실제로 행동을 일으키는 지점 즉, 검색·비교·구매 등 의사결정이 발생하는 '행동의 장소'를 의미합니다. 고객이 어디에서 사는지(buy), 어느 곳에 사는지(live)는 여전히 중요한 요소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자사 플랫폼 안에서 고객들이 무엇을 보고, 어디서 클릭하고, 누가 추천해주는 상품을 구입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고객 행동 위치의 최적화를 도와주는 기술이 바로 AI입니다.
벨 교수는 "소매산업에는 여전히 비효율적인 일들이 많고, 그 만큼 혁신의 기회도 많다"며 "AI는 이러한 혁신을 가능케 하며, AI를 통해 가장 큰 가치를 창출할 산업도 바로 소매업"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림 1 : 글로벌 소매산업의 위상
자료 : 데이비드 R. 벨 박사
2. 제3차 유통 대변혁 가져올 'AI'
AI는 비즈니스 프로젝트
유통에서 AI는 이제 '기술적 도구’를 넘어 전략, 운영, 마케팅 등 유통 전반에 걸쳐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핵심 인프라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최근 1~2년 사이 열리고 있는 주요 글로벌 유통 컨퍼런스에서 핵심 메시지를 관통하는 것도 AI를 통한 소매혁신입니다.
이날 포럼 연사로 참여한 김호민 아마존 아태지역 유통 부문장은 현재 소매업계 AI 적용단계를 설명하고, 어떻게 하면 AI를 실질적인 비즈니스 성과로 연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시했습니다.
김호민 부문장은 "지난 30여년 간 글로벌 소매산업은 두 번의 대변혁기를 거쳤다"며 "첫 번째 변혁은 1990년대 중후반 이베이와 아마존의 등장으로 시작된 이커머스 탄생, 두 번째는 2010년경 애플의 아이폰으로 촉발된 모바일 혁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두 차례의 혁신은 유통의 판도를 뒤집으며 소비자의 쇼핑행태는 물론 소매기업의 운영 방식 모두를 바꿔 놓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AI, 특히 생성형 AI 기반의 유통 혁신이 촉발할 ‘세 번째 대변혁기’의 초입에 있습니다.
생성형 AI가 소매업에 접목되면서 그 변화는 매우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챗GPT가 처음 등장한 2023년, 기업들은 수많은 실험과 테스트를 통해 기술을 검증했고, 2024년에는 실제 제품과 서비스에 적용하기 시작했으며, 올해는 비즈니스에서 실질적인 가치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기술 도입부터 검증, 실험, 성과창출까지 채 3년이 안걸린 셈이죠.
그림 2 : AI 기술 발전 단계
자료 : AWS
AI기술 투자와 활용 측면에서 가장 선도적인 기업은 역시 아마존인데요. 김호민 부문장은 "아마존은 사실상 모든 업무, 모든 가치사슬 단계, 모든 고객의 여정에 AI를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에이전트 AI(Agentic AI)를 접목한 쇼핑 어시스턴트 '루퍼스(Rufus)'입니다. 아마존은 고객의 69%가 쇼핑몰에 접속하자마자 검색창으로 이동하지만, 80%가 검색 결과에 만족하지 못해 이탈한다는 점에 주목해 루퍼스 서비스를 개발했어요. 쉽게 말해 검색창 안에 챗GPT가 들어온 것 같은 대화형 쇼핑경험을 구현한 것이죠. 루퍼스는 아마존 내 축적된 고객 데이터에 기반해 상황, 의도, 맥락에 최적화된 상품을 추천합니다. “캠핑 갈 때 무엇을 사야 하지?”, “헤드셋을 살 때 고려할 점은?”과 같은 자연어 질문도 가능하죠.
두 번째 사례는 지난 4월 시범 도입한 ‘바이포미(Buy for Me)’ 기능입니다. 말 그대로 아마존이 고객을 대신해 상품을 구매해주는 서비스인데요. 고객이 아마존 쇼핑몰 안에서 원하는 상품을 찾지 못할 경우 에이전트 AI가 외부 사이트까지 탐색해 상품검색부터 결제, 배송 요청까지 전 과정을 대행합니다.
아마존은 이 외에도 수요예측부터 주문배송 처리, 가격책정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에이전트 AI를 활용하고 있어요. 김호민 부문장은 "AI 프로젝트는 기술 프로젝트가 아니라 비즈니스 프로젝트"라며 "조직 내 디지털 리터러시 구축, 실험을 장려하는 문화, 비즈니스·기술 조직의 협업,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외부 파트너 확보가 AI 프로젝트 성공의 핵심"이라고 조언했습니다.
3. 소매업 미래의 세 가지 방향
세계화, 지속가능경영, 디지털화
와세다대학의 카와카미 토모코 교수는 일본의 대표 소매기업인 이온(Aeon)과 유니클로(Uniqlo)의 경영전략을 통해 미래 소매기업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이온은 우리나라 대형마트와 유사한 GMS(General Merchandise Store) 포맷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이고, 유니클로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패스트패션 브랜드입니다.
카와카미 교수에 따르면 운영하는 업태는 다르지만, 두 기업 모두 '세계화(Globalization)’,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디지털화(Digitalization)'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미래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유니클로는 미국, 유럽, 아시아 등에서 일본의 두 배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죠. 해외사업 호조에 힘입어 지난 8월 마감한 유니클로 연매출은 전년 대비 9.6% 증가한 3조 4,000억 엔(222억 달러)을 기록했고, 영업이익도 전년대비 13% 증가한 5,643억 엔(37억 달러)을 기록했습니다. 이온 역시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외진출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이온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Net Zero)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1991년부터 30년 넘게 약 3천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유니클로가 지향하는 지속가능경영은 '라이프웨어(LifeWear)'라는 가치에 농축돼 있습니다. 라이프웨어는 '모든 사람이 편안하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겠다는 유니클로의 핵심 철학인데요. 빠르게 바뀌는 유행을 좇는 대신 오래 입을 수 있는 좋은 품질의 옷을 만들어 과잉생산과 낭비를 줄이자는 취지가 담겨 있습니다. 생산 과정에서는 재활용 소재와 친환경 원단을 사용하고, 판매 이후에도 헌옷 수거(RE.UNIQLO) 프로그램을 통해 의류를 재사용·재활용할 수 있도록 독려합니다.
두 기업의 세 번째 공통 전략인 디지털화는 카와카미 교수가 가장 강조한 부분입니다.
유니클로는 모바일 앱뿐 아니라 RFID 기술을 이용해 계산대에 올리기만 하면 자동결제되는 시스템, VR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피팅룸 등 매장의 디지털화에도 선도적으로 투자하고 있어요.
전통 오프라인 소매기업인 이온 역시 최근 디지털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어요. 2023년 각 계열사별로 흩어진 고객정보를 모아 '아이이온(i-Aeon)'이라는 디지털 통합 플랫폼을 구축하는 한편, 매장에는 모바일 셀프 스캔 결제 시스템인 레지고(RegiGo)를 도입했습니다. 레지고는 고객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레지고 앱에 접속해 장보기와 계산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셀프체크아웃보다 한단계 진화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온은 레지고 앱과 아이이온 앱을 연동해 레지고 앱에서도 고객 개인별 추천상품이 표시되고 자동으로 쿠폰도 적용될 수 있도록 할 방침입니다.
카와카미 교수는 이온과 유니클로가 공통되게 지향하는 세계화, 지속가능성, 디지털화는 급변하는 시대에 소매 경쟁력 확보를 위해 모든 소매업체들이 추구해야 할 필수전략일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일본 이온은 매장에서 쇼핑하면서 결제까지 할 수 있는 모바일 셀프 스캔 결제 시스템 '레지고(RegiGo)'를 도입했어요.
4. 글로벌 혁신의 중심, APEC
모바일 커머스에서 모빌리티 커머스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은 전세계 디지털 커머스 거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빠른 기술 수용과 높은 수요에 힘입어 유통 혁신이 급속도로 전개되는 역동적 시장입니다. 전세계 모바일 커머스의 80%가 이뤄지며, 라이브커머스가 태동한 것도 아시아 지역이죠.
딜로이트 아시아퍼시픽 소비재산업 마티스센 리드는 "아태 지역은 소매 혁신이 가장 빠르게 등장하고 확산되는 곳"이라며 "특히 세 가지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 첫 번째가 옴니채널 분야인데요.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매끄럽게 연결해 일관성 있고 편리한 쇼핑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모든 소매업체가 지향하고 있지만, 성공적으로 실행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마티스센 리드는 아태 지역의 대표적인 옴니채널 성공사례로 중국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허마(Freshippo)'와 싱가포르의 '페어프라이스(FairPrice)'를 소개했습니다.
허마는 알리바바 그룹이 신유통을 주창하며 론칭한 슈퍼마켓으로 매장 공간의 일부를 물류 및 온라인 주문 처리용 백오피스로 활용하고 온-오프를 연계해 ‘미래형 리테일 포맷’을 구현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싱가포르의 유통기업 페어프라이스 역시 온-오프라인을 통합한 하이브리드 쇼핑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올해 8월 풍골 디지털 지구 내 개점한 페어프라이스 파이니스트(FairPrice Finest) 매장은 개인화된 쇼핑추천 및 프로모션 안내, VR을 연동한 엔드리스 매대, 생체이식 결제 등 곳곳에 AI 기술이 적용된 미래형 슈퍼마켓입니다.
싱가포르 페어프라이스가 올해 선보인 AI 기반의 미래형 슈퍼마켓.
두 번째 아태 소매기업들이 앞서고 있는 분야는 디지털 중심의 생태계 구축입니다. 알리바바, 라자다, 그랩 같은 곳은 커머스 외에도 물류, 핀테크 등 다양한 기업과 제휴, 고객에게 통합된 쇼핑경험을 제공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자동차 제조기업과 협업해 모빌리티 커머스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국 자동차 기업 지리(Geely)와 티몰(Tmall)이 대표적인 협업사례예요. 지리는 차량 안에 쇼핑, 결제가 가능한 환경을 구축하고 티몰은 차량 안에서 상품을 검색·주문할 수 있도록 커머스 채널 역할을 하며, 배송 기업 어러머(Ele.me)는 차 안에서 주문한 음료나 음식을 차량 위치 기반으로 즉시 배달해주는 역할을 맡습니다. 고객이 이동 중에도 구매→결제→배송까지 완결되는 모빌리티 기반 커머스가 구현되는 셈이죠. 중국의 또 다른 자동차 제조사인 니오(NIO)와 이커머스 플랫폼 징동닷컴(JD.com)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차량 내 식음료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마티스센 리드는 “딜로이트 분석에 따르면 향후 5년 내에 아태 지역의 상거래 매출 70%가 디지털 플랫폼에 의존할 것으로 예측된다”며 “하지만, 국가 간, 지역 간 디지털 인프라 격차가 존재하는 만큼 이를 해소하기 위한 인프라 개선, 교육, 제도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5. AI 시대의 글로벌 표준
신뢰성 있는 데이터가 AI 경쟁력
이날 세 번째 연사로 나선 GS1 르노 드 바르부아 CEO는 "우리는 지금 AI가 산업과 경제는 물론 사회구조까지 재편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있다"며 "AI 시대에는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확보'가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강조했습니다. GS1(Global Standard No.1)은 전세계에서 활용되고 있는 상품 바코드(UPC·EAN)와 표준 유통 식별코드를 관리하는 국제 비영리 표준기구입니다.
르노 CEO는 “AI는 제품생산부터 배송, 판매, 고객경험에 이르기까지 유통 전 과정을 혁신하지만, AI 기술의 기반인 데이터의 신뢰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잘못된 판단과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며 "AI의 진정한 힘은 데이터의 신뢰성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GS1은 전 세계 제품의 고유 식별 정보를 담은 글로벌 등록 시스템(Global Registries)을 구축하고 정확한 상품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으며, AI 시대에 맞춰 보다 많은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하기 위한 이차원 바코드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르노 CEO는 "1974년 처음 도입된 바코드 시스템을 계기로 전세계 유통혁신이 이뤄졌듯이 제품의 안전, 재활용 지침, 환경 영향 정보까지 확인할 수 있는 2차원 바코드(GS1 QR코드)가 AI 시대의 새로운 유통 혁신을 이끌 것"이라며 "이를 위해 글로벌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유통 퓨처테크포럼’은 AI, 데이터, 지속가능성, 디지털 전환 등 글로벌 소매산업의 핵심 화두를 한 자리에서 논의한 의미 있는 자리였습니다. 연사들은 AI 시대의 소매업은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생태계를 구축해야 하며, ‘신뢰와 협력’이 유통 혁신의 진정한 기반임을 공통적으로 강조했어요.
경주에서 열린 APEC 리테일 퓨처테크포럼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이 전 세계 유통 혁신을 이끌어가는 중심 무대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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