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백화점의 폐점 현상이 지방 소도시에 이어 도쿄 중심가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작년 9월 도쿄 한...
2023. 10. 18ㅣ 5 min read글 : 정희선(유자베이스 시니어 애널리스트)
| 글 · 사진 : 정희선현재 일본 리서치 기업 유자베이스(UZABASE)에서 시니어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아시아 지역의 산업분석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도쿄 리테일 트렌드』, 『공간, 비즈니스를 바꾸다』, 『사지 않고 삽니다』, 『라이프스타일 판매 중』이 있으며, 다양한 매체에
일본 산업분석 및 트렌드를 주제로 기고하고 있습니다. |
지방에서 도쿄로 확산된 폐점 행렬,
매장 밖에서 고객 만나는 일본 백화점
도쿄 시부야 역에서 57년 간 영업해오던 도큐백화점이 올해 2월 폐점했습니다(사진 : 도큐백화점 홈페이지).
- 일본 철도계 백화점, 연이은 폐점
- 매출 확보 위해 '외상' 비즈니스 강화
- 젊은 부유층 늘며 외상 고객도 젊어져
일본 백화점의 폐점 현상이 지방 소도시에 이어 도쿄 중심가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작년 9월 도쿄 한복판 신주쿠의 ‘오다큐백화점(Odakyu Department Store)’이 폐점한 데 이어 올해 2월에는 1967년에 개점한 도쿄 시부야의 명소 ‘도큐백화점(Tokyu Department)’이 영업을 중단해 업계에 충격을 줬습니다.
일본 유통업계 2위 업체인 ‘세븐&아이홀딩스’가 운영하던 소고&세이부 백화점(Sogo&Seibu)은 미국 펀드인 포트리스 인베스트먼트 그룹(Fortress Investment Group)에 매각되었죠.
일본 트렌드 전문가 유자베이스의 정희선 시니어 애널리스트가 일본 백화점 업계의 현황과 해법에 대해 짚어봤습니다.
2021년부터 코로나 기저효과와 중국 관광객 유입으로 일본 백화점 매출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일본 백화점 전체 매출액은 2014년 이래 2020년까지 매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습니다(그림 1 참고). 특히 코로나19가 발발한 2020년 매출액은 전년대비 26.7% 급감했어요.
자료 : 일본백화점협회
점포 수 역시 2010년 이후 매년 감소세에 있습니다. 2010년 261개였던 일본 백화점 점포 수는 올해 10월 기준 181개로, 14년 만에 30.6% 감소했습니다.
지속되는 시장 위축 속에 위기감이 팽배한 일본 백화점 업계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어떤 시도들을 하고 있을까요?
자료 : 일본백화점협회
일본 백화점은 크게 철도 회사들이 운영하는 백화점과 포목점(옷감을 판매하는 가게)에서 출발한 백화점으로 나눌 수 있어요. 전자의 예가 도큐백화점, 세이부백화점, 후자의 예가 미츠코시백화점과 이세탄백화점입니다.
최근 경영 실적 악화로 연이어 폐업한 백화점들은 바로 이 철도 회사에서 운영하는 곳들입니다.
철도계 백화점들은 일본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절, 전철을 이용해 교외에서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고객들의 니즈를 노리고 탄생해 성장을 구가했지만, 소비 트렌드 변화에 따라 서서히 입지를 잃어갔습니다. 온라인 쇼핑몰, 대형 쇼핑센터, 아웃렛 등 백화점을 대체하는 경쟁자가 등장하며 집객력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는 유동 인구가 급감하면서 매출과 수익이 반토막나는 곳들도 많았습니다.
백화점이 폐점한 자리는 '긴자 식스(GINZA SIX)'와 같은 고급 상업시설이나 호텔 혹은 대형 복합몰 등이 들어섰거나 들어설 예정이지만, 아쉽게도 다시 백화점이 개점할 것이라는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 철도회사에서 운영하는 일본 백화점들이 경영악화로 연이어 폐점하고 있습니다.
외상, 백화점 VIP를 전담하다
이렇듯 지각변동이 일면서 일본 백화점 업계는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쟁이 한창인데요,
바로 ‘외상(外商)’ 담당 직원을 스카우트하기 위한 업체간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국내에는 생소한 ‘외상(外商)’이라는 단어 뜻부터 살펴볼까요?
외상이란 매장 내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유통업체가 기업 및 개인 고객이 있는 장소로 찾아가 물건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외(外)라는 한자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 밖에서 판매(商)하는 영업활동을 의미하며, 에도시대 관료의 저택을 돌며 주문을 받던 옷 가게 관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포목점이 백화점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도 외상 전담 부서는 사라지지 않고 존재해 왔으며, 주로 구매력이 높은 부유층 개인고객이나 법인고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해 왔습니다.
외상의 형태는 물건을 싸 들고 직접 고객 집을 방문하는 경우도 있지만, 최근에는 백화점 내 별도 공간에 고객을 모시고 그들이 좋아할 만한 제품을 가져와 판매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국내외 백화점들의 퍼스널쇼퍼 서비스나 VIP 서비스와 유사한 방식이죠.
외상 고객 파워,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세탄백화점 경우 외상 고객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20%에 이릅니다. 다른 백화점들도 적게는 15%에서 많게는 30% 정도의 매출을 외상 고객이 책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 2월 폐점한 도큐백화점 경우는 외상 고객 매출 비중이 무려 40%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도큐백화점 인근에는 도쿄에서도 손꼽히는 고급 주택가인 쇼토(松濤) 지구가 위치해 있는데, 일반 고객의 집객에 어려움을 겪은 도큐백화점이 쇼토 지구의 부유층 고객들에게 외상 영업을 집중한 결과입니다.
외상 영업에 강했던 도큐백화점이 폐업하면서 노하우를 축적한 직원들을 확보하기 위한 스카우트 경쟁이 물밑에서 한창입니다.
외상 비즈니스는 담당 점원과 고객 간 쌓은 신뢰가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외상 직원이 다른 백화점으로 옮길 경우 점원을 따라 고객도 이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코로나19 확산 이후 일본 백화점들은 외상 비즈니스에 더욱 집중했습니다. 주식, 부동산 등 자산 가치는 상승하는데 해외여행 발목이 묶이면서 시계, 보석과 같은 고가품을 구입하는 외상 고객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이 발길을 끊은 코로나 기간에 외상 고객은 백화점들에게 구세주나 다름 없었습니다.
실제로 미츠코시 이세탄 경우 신주쿠점과 니혼바시점 2개 매장의 외상 매출액이 2019년 716억 엔에서 2022년 860억 엔으로 20.1% 증가했습니다.
한큐 한신 백화점 역시 2022년 기준, 전 점포의 외상 매출액이 역대 최고인 740억 엔을 달성하면서 코로나 기간 백화점을 지탱하는 힘이 됐습니다.
- 일본 백화점 업계는 구매력 높은 외상 고객 확보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어요.
불황에도 탄탄한 일본 부유층
일본 백화점이 외상 고객에게 주력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오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외상 고객의 기반이 매우 탄탄하기 때문입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의 가계 자산 규모는 472조 달러로 2016년 대비 40% 증가한 데 비해 일본 경우 같은 기간 10% 정도 늘어나는 데 그쳤습니다.
즉, ‘잃어버린 30년’ 동안 일본 국민들의 소득 수준은 제자리걸음을 한 것이죠.
하지만 부유층은 상황이 다릅니다. 일본에서 100만 달러 이상 자산을 보유한 사람은 2021년 기준 365만 명으로, 이는 미국의 746만 명에 이어 세계 2위입니다.
이세탄백화점의 한 관계자가 “현재 우리는 일본 부유층 시장의 극히 일부만을 공략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일본의 부유층 시장은 앞으로도 잠재력이 크다고 할 수 있어요.
젊어지는 외상 고객,
구매제품도 달라져
백화점 고객층이 젊어지면서 최근 외상 고객들의 연령대도 낮아지고 있어요.
특히 비교적 젊은층인 30~40대 소비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데요.
이세탄 신주쿠 본점에서 2021년에 1천만 엔(약 1억 원)이상 구매한 외상 고객 중 44세 이하 고객의 구매액은 2019년 대비 5.4배 증가했습니다. 다른 연령대 경우 1~2배 증가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큰 폭의 증가율입니다.
젊은 외상 고객들의 특징 중 하나는 구매시 속도를 중시한다는 점이에요.
쇼핑에 많은 시간은 투자하기보다 짬을 내 매장을 방문해서 원하는 상품을 외상 고객 전용 라운지에서 확인한 뒤 빠르게 구매의사를 결정합니다.
업계에서도 이에 맞게 외상 전담팀을 개편하는 곳들이 늘고 있어요.
이세탄백화점 경우 일대일 접객이 기본 방침이었지만 최근에는 외상 담당직원 3~4명이 팀을 이뤄 한 명의 고객을 담당하는 체제를 도입했는데요. 시간을 중시하는 젊은 고객들의 니즈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이마루 마츠자카야 백화점 또한 최근 젊은 외상 고객 유치에 적극적입니다.
실제 2021년 40대 이하 외상 고객 구매액은 2018년 대비 57% 증가했는데, 이 계기가 된 것이 온라인 가입 창구를 마련한 것입니다.
기존에는 백화점이 먼저 구매액이 높은 고객에게 다가가는 시스템이었다면, 다이마루 마츠자카야는 이례적으로 온라인 채널을 통해 외상 고객을 모집한 것이죠.
그 결과 자발적으로 외상 서비스를 신청하는 고객들이 늘었는데 그 가운데 25~44세 비중이 60%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오사카 한큐 우메다 본점 역시 최근 40대 신규 부유층 고객이 늘고 있습니다. 젊은 기업가들이 외상 고객에 신규로 가입하면서 연간 수천만 원 이상 구매하는 매출 기여도 상위 고객 수가 몇 배로 늘었다고 합니다.
- 일본에 젊은 부유층이 늘면서 외상 고객도 젊어지고 있습니다.
외상 고객이 젊어지는 현상은 백화점들도 반기고 있습니다.
그동안 일본 백화점들의 고민 중 하나는 고객이 고령화였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치재 소비를 줄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고가품 비중이 높은 백화점에게 고객 고령화는 반갑지 않은 신호였죠.
젊은 외상 고객이 증가하면서 구매하는 제품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신진 디자이너 제품이나 젊은 세대에게 인기 있는 명품, 그리고 와인이나 미술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인데요. 특히 예술품에 관심 많은 젊은 고객들이 1천만 엔(1억 원)을 호가하는 그림을 구입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백화점들은 젊은층에게 인기 있는 예술가의 작품들을 취급하기 시작했고, 외상 직원들도 미술과 와인 관련 수업을 듣는 등 고객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객과 해외 관람회 동행까지
뜨거워지는 외상 비즈니스
부유층 경우 여러 백화점에서 외상 고객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선택받기 어렵습니다.
이세탄백화점 경우 최근 한 고객 요청에 따라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에서 맞춤형 드레스를 주문해 주는 서비스도 도입했는데, 이는 일본 백화점 업계에서는 전례가 없던 일이라고 합니다.
다이마루 마츠자카야는 '타워 맨션 통째로 외상(タワマン丸ごと外商)’을 시작했습니다.
다이마루 신사이바시점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위치한 일본의 고급 맨션에 거주하는 구매자 전체를 대상으로 외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마츠야 긴자는 같은 긴자 지역에 있는 한큐 맨즈 백화점과 연계해 서로의 고객을 상호 접객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백화점 업계의 외상 전담 직원은 해외 브랜드의 쇼룸 방문, 하와이 여행 초대, 파리 콜렉션 관람 등의 이벤트를 기획하고 필요한 경우 고객과 동행하는 서비스까지 담당합니다.
백화점 집객력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구매력이 높은 고객에게 힘을 쏟는 것은 당연한 전략입니다.
이세탄백화점의 중기 경영계획 발표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매스(mass)에서 개인으로’라는 슬로건입니다.
앞으로 불특정 다수의 중산층을 대상으로 폭넓게 소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명확하게 타깃을 설정해서 개개인에게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 전략의 핵심에는 자연스럽게 외상 고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요즘 소비자들은 '플렉스(과시를 위해 구매하거나 사치한다는 의미의 신조어)'를 하거나 아니면 지출을 하지 않습니다.
시장에는 '초고가' 혹은 '초저가' 상품만이 살아남고 있습니다.
소비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지금, 백화점들이 젊은 부유층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전략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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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0. 18ㅣ 5 min read글 : 정희선(유자베이스 시니어 애널리스트)
글 · 사진 : 정희선
현재 일본 리서치 기업 유자베이스(UZABASE)에서 시니어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아시아 지역의 산업분석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도쿄 리테일 트렌드』, 『공간, 비즈니스를 바꾸다』, 『사지 않고 삽니다』, 『라이프스타일 판매 중』이 있으며, 다양한 매체에 일본 산업분석 및 트렌드를 주제로 기고하고 있습니다.
지방에서 도쿄로 확산된 폐점 행렬,
매장 밖에서 고객 만나는 일본 백화점
도쿄 시부야 역에서 57년 간 영업해오던 도큐백화점이 올해 2월 폐점했습니다(사진 : 도큐백화점 홈페이지).
일본 백화점의 폐점 현상이 지방 소도시에 이어 도쿄 중심가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작년 9월 도쿄 한복판 신주쿠의 ‘오다큐백화점(Odakyu Department Store)’이 폐점한 데 이어 올해 2월에는 1967년에 개점한 도쿄 시부야의 명소 ‘도큐백화점(Tokyu Department)’이 영업을 중단해 업계에 충격을 줬습니다.
일본 유통업계 2위 업체인 ‘세븐&아이홀딩스’가 운영하던 소고&세이부 백화점(Sogo&Seibu)은 미국 펀드인 포트리스 인베스트먼트 그룹(Fortress Investment Group)에 매각되었죠.
일본 트렌드 전문가 유자베이스의 정희선 시니어 애널리스트가 일본 백화점 업계의 현황과 해법에 대해 짚어봤습니다.
2021년부터 코로나 기저효과와 중국 관광객 유입으로 일본 백화점 매출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일본 백화점 전체 매출액은 2014년 이래 2020년까지 매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습니다(그림 1 참고). 특히 코로나19가 발발한 2020년 매출액은 전년대비 26.7% 급감했어요.
자료 : 일본백화점협회
점포 수 역시 2010년 이후 매년 감소세에 있습니다. 2010년 261개였던 일본 백화점 점포 수는 올해 10월 기준 181개로, 14년 만에 30.6% 감소했습니다.
지속되는 시장 위축 속에 위기감이 팽배한 일본 백화점 업계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어떤 시도들을 하고 있을까요?
자료 : 일본백화점협회
일본 백화점은 크게 철도 회사들이 운영하는 백화점과 포목점(옷감을 판매하는 가게)에서 출발한 백화점으로 나눌 수 있어요. 전자의 예가 도큐백화점, 세이부백화점, 후자의 예가 미츠코시백화점과 이세탄백화점입니다.
최근 경영 실적 악화로 연이어 폐업한 백화점들은 바로 이 철도 회사에서 운영하는 곳들입니다.
철도계 백화점들은 일본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절, 전철을 이용해 교외에서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고객들의 니즈를 노리고 탄생해 성장을 구가했지만, 소비 트렌드 변화에 따라 서서히 입지를 잃어갔습니다. 온라인 쇼핑몰, 대형 쇼핑센터, 아웃렛 등 백화점을 대체하는 경쟁자가 등장하며 집객력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는 유동 인구가 급감하면서 매출과 수익이 반토막나는 곳들도 많았습니다.
백화점이 폐점한 자리는 '긴자 식스(GINZA SIX)'와 같은 고급 상업시설이나 호텔 혹은 대형 복합몰 등이 들어섰거나 들어설 예정이지만, 아쉽게도 다시 백화점이 개점할 것이라는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외상, 백화점 VIP를 전담하다
이렇듯 지각변동이 일면서 일본 백화점 업계는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쟁이 한창인데요,
바로 ‘외상(外商)’ 담당 직원을 스카우트하기 위한 업체간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국내에는 생소한 ‘외상(外商)’이라는 단어 뜻부터 살펴볼까요?
외상이란 매장 내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유통업체가 기업 및 개인 고객이 있는 장소로 찾아가 물건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외(外)라는 한자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 밖에서 판매(商)하는 영업활동을 의미하며, 에도시대 관료의 저택을 돌며 주문을 받던 옷 가게 관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포목점이 백화점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도 외상 전담 부서는 사라지지 않고 존재해 왔으며, 주로 구매력이 높은 부유층 개인고객이나 법인고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해 왔습니다.
외상의 형태는 물건을 싸 들고 직접 고객 집을 방문하는 경우도 있지만, 최근에는 백화점 내 별도 공간에 고객을 모시고 그들이 좋아할 만한 제품을 가져와 판매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국내외 백화점들의 퍼스널쇼퍼 서비스나 VIP 서비스와 유사한 방식이죠.
외상 고객 파워,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세탄백화점 경우 외상 고객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20%에 이릅니다. 다른 백화점들도 적게는 15%에서 많게는 30% 정도의 매출을 외상 고객이 책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 2월 폐점한 도큐백화점 경우는 외상 고객 매출 비중이 무려 40%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도큐백화점 인근에는 도쿄에서도 손꼽히는 고급 주택가인 쇼토(松濤) 지구가 위치해 있는데, 일반 고객의 집객에 어려움을 겪은 도큐백화점이 쇼토 지구의 부유층 고객들에게 외상 영업을 집중한 결과입니다.
외상 영업에 강했던 도큐백화점이 폐업하면서 노하우를 축적한 직원들을 확보하기 위한 스카우트 경쟁이 물밑에서 한창입니다.
외상 비즈니스는 담당 점원과 고객 간 쌓은 신뢰가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외상 직원이 다른 백화점으로 옮길 경우 점원을 따라 고객도 이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코로나19 확산 이후 일본 백화점들은 외상 비즈니스에 더욱 집중했습니다. 주식, 부동산 등 자산 가치는 상승하는데 해외여행 발목이 묶이면서 시계, 보석과 같은 고가품을 구입하는 외상 고객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이 발길을 끊은 코로나 기간에 외상 고객은 백화점들에게 구세주나 다름 없었습니다.
실제로 미츠코시 이세탄 경우 신주쿠점과 니혼바시점 2개 매장의 외상 매출액이 2019년 716억 엔에서 2022년 860억 엔으로 20.1% 증가했습니다.
한큐 한신 백화점 역시 2022년 기준, 전 점포의 외상 매출액이 역대 최고인 740억 엔을 달성하면서 코로나 기간 백화점을 지탱하는 힘이 됐습니다.
불황에도 탄탄한 일본 부유층
일본 백화점이 외상 고객에게 주력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오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외상 고객의 기반이 매우 탄탄하기 때문입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의 가계 자산 규모는 472조 달러로 2016년 대비 40% 증가한 데 비해 일본 경우 같은 기간 10% 정도 늘어나는 데 그쳤습니다.
즉, ‘잃어버린 30년’ 동안 일본 국민들의 소득 수준은 제자리걸음을 한 것이죠.
하지만 부유층은 상황이 다릅니다. 일본에서 100만 달러 이상 자산을 보유한 사람은 2021년 기준 365만 명으로, 이는 미국의 746만 명에 이어 세계 2위입니다.
이세탄백화점의 한 관계자가 “현재 우리는 일본 부유층 시장의 극히 일부만을 공략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일본의 부유층 시장은 앞으로도 잠재력이 크다고 할 수 있어요.
젊어지는 외상 고객,
구매제품도 달라져
백화점 고객층이 젊어지면서 최근 외상 고객들의 연령대도 낮아지고 있어요.
특히 비교적 젊은층인 30~40대 소비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데요.
이세탄 신주쿠 본점에서 2021년에 1천만 엔(약 1억 원)이상 구매한 외상 고객 중 44세 이하 고객의 구매액은 2019년 대비 5.4배 증가했습니다. 다른 연령대 경우 1~2배 증가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큰 폭의 증가율입니다.
젊은 외상 고객들의 특징 중 하나는 구매시 속도를 중시한다는 점이에요.
쇼핑에 많은 시간은 투자하기보다 짬을 내 매장을 방문해서 원하는 상품을 외상 고객 전용 라운지에서 확인한 뒤 빠르게 구매의사를 결정합니다.
업계에서도 이에 맞게 외상 전담팀을 개편하는 곳들이 늘고 있어요.
이세탄백화점 경우 일대일 접객이 기본 방침이었지만 최근에는 외상 담당직원 3~4명이 팀을 이뤄 한 명의 고객을 담당하는 체제를 도입했는데요. 시간을 중시하는 젊은 고객들의 니즈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이마루 마츠자카야 백화점 또한 최근 젊은 외상 고객 유치에 적극적입니다.
실제 2021년 40대 이하 외상 고객 구매액은 2018년 대비 57% 증가했는데, 이 계기가 된 것이 온라인 가입 창구를 마련한 것입니다.
기존에는 백화점이 먼저 구매액이 높은 고객에게 다가가는 시스템이었다면, 다이마루 마츠자카야는 이례적으로 온라인 채널을 통해 외상 고객을 모집한 것이죠.
그 결과 자발적으로 외상 서비스를 신청하는 고객들이 늘었는데 그 가운데 25~44세 비중이 60%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오사카 한큐 우메다 본점 역시 최근 40대 신규 부유층 고객이 늘고 있습니다. 젊은 기업가들이 외상 고객에 신규로 가입하면서 연간 수천만 원 이상 구매하는 매출 기여도 상위 고객 수가 몇 배로 늘었다고 합니다.
외상 고객이 젊어지는 현상은 백화점들도 반기고 있습니다.
그동안 일본 백화점들의 고민 중 하나는 고객이 고령화였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치재 소비를 줄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고가품 비중이 높은 백화점에게 고객 고령화는 반갑지 않은 신호였죠.
젊은 외상 고객이 증가하면서 구매하는 제품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신진 디자이너 제품이나 젊은 세대에게 인기 있는 명품, 그리고 와인이나 미술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인데요. 특히 예술품에 관심 많은 젊은 고객들이 1천만 엔(1억 원)을 호가하는 그림을 구입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백화점들은 젊은층에게 인기 있는 예술가의 작품들을 취급하기 시작했고, 외상 직원들도 미술과 와인 관련 수업을 듣는 등 고객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객과 해외 관람회 동행까지
뜨거워지는 외상 비즈니스
부유층 경우 여러 백화점에서 외상 고객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선택받기 어렵습니다.
이세탄백화점 경우 최근 한 고객 요청에 따라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에서 맞춤형 드레스를 주문해 주는 서비스도 도입했는데, 이는 일본 백화점 업계에서는 전례가 없던 일이라고 합니다.
다이마루 마츠자카야는 '타워 맨션 통째로 외상(タワマン丸ごと外商)’을 시작했습니다.
다이마루 신사이바시점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위치한 일본의 고급 맨션에 거주하는 구매자 전체를 대상으로 외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마츠야 긴자는 같은 긴자 지역에 있는 한큐 맨즈 백화점과 연계해 서로의 고객을 상호 접객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백화점 업계의 외상 전담 직원은 해외 브랜드의 쇼룸 방문, 하와이 여행 초대, 파리 콜렉션 관람 등의 이벤트를 기획하고 필요한 경우 고객과 동행하는 서비스까지 담당합니다.
백화점 집객력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구매력이 높은 고객에게 힘을 쏟는 것은 당연한 전략입니다.
이세탄백화점의 중기 경영계획 발표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매스(mass)에서 개인으로’라는 슬로건입니다.
앞으로 불특정 다수의 중산층을 대상으로 폭넓게 소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명확하게 타깃을 설정해서 개개인에게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 전략의 핵심에는 자연스럽게 외상 고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요즘 소비자들은 '플렉스(과시를 위해 구매하거나 사치한다는 의미의 신조어)'를 하거나 아니면 지출을 하지 않습니다.
시장에는 '초고가' 혹은 '초저가' 상품만이 살아남고 있습니다.
소비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지금, 백화점들이 젊은 부유층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전략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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